환경당국, "야생생물법 위반했다"며 서울대공원 고발

"사육공간 부족해 없애도... 좁은데서 키워도 처벌 받는다"

작년 6월 국제멸종위기종인 ‘그물무늬왕뱀’ 번식에 성공한 서울대공원. 석달 뒤 뱀이 낳은 알 18개를 폐기 처분했다. 알을 부화해 새끼가 태어나면 법에 정해져 있는 ‘사육 공간 규정’을 충족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여러차례 회의를 거쳐 고민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그러나 서울대공원은 최근 경찰에 고발됐다. 환경부 산하 한강유역환경청이 야생생물법을 어겼다며 고발장을 낸 것이다.

서울대공원 측은 "폐기 처분 직전까지 다른 동물원에 기증을 시도하는 등 해결책을 모색했지만 도저히 방법이 없어 폐기처분이 불가피했다"며 "환경부에 사육장 여건 등을 충분히 소명했지만 결국 고발을 당했다"고 했다. 환경부 측은 "서울대공원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동물원의 폐기 처분은 위법이 뚜렷해 어쩔 수 없었다"고 했다.

◇"20마리 다 부화시키면 사육공간 1000평 넘게 필요해서…"

서울대공원이 폐사한 그물무늬왕뱀은 뱀목 보아과로, 아시아에서 가장 큰 뱀. 인도와 미얀마 등 남아시아 지역에 주로 서식하며, 야생에서는 길이 7m까지 자란다. 밀렵꾼들이 가죽을 노려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서 보호종으로 지정돼 있다. 이른바 국제멸종위기종 2급이다.

서울대공원은 지난 1984년 길이 5m 짜리 그물무늬왕뱀 암수 한쌍을 처음 데려왔다. 이후 꾸준히 번식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럴 때마다 새 개체를 데려와 다시 번식을 시도하곤 했다. 결국 35년만인 작년 6월 처음으로 번식에 성공했다. 뱀 쌍이 무려 20개의 알을 낳은 것이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사육사들은 기쁘면서 낭패라고 생각했다. 사육장 공간이 좁아 다 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현행법상 동물원은 동물 개체 수가 늘어날 때마다 사육 시설을 현재 넓이에서 35%씩 넓히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알 20개를 모두 부화시켜 새끼 뱀 20마리가 늘어나게 되면 현재 3평 남짓한 사육장을 400배 이상 큰 1000평이 넘는 규모로 마련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 기준을 지키지 않으면 법은 동물원 측과 사육사를 처벌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울대공원은 수차례 회의를 거쳐 알 20개 중 건강한 개체 2개만 부화를 시키기로 결정하고, 나머지 18개는 냉동해 폐사 처분했다. 부화시킨 뱀 2마리는 작년 9월 태어났다.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그동안 번식을 하려고 노력한 사육사들을 처벌받게 할 수는 없었다"면서 "나머지 알을 없애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당시 다른 동물원에 기증하는 방법도 알아보고 수용 가능한 다른 시설이 있는지도 백방으로 찾아봤었다"면서 "사육공간을 마련하는 방법도 고민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환경당국, 고발 대신 함께 대책 찾아줘야 하지 않나"

뱀 알 폐사 문제는 최근 언론에 보도되면서 알려졌다. "생명을 존중할 줄 모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서울대공원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동물에 대한 기본 상식이 없다" "절대 서울대공원을 방문하지 않겠다" "멸종위기종을 냉동해서 박제시키는 것이 정말 동물원이 하는 역할인가" 등의 글이 줄을 이었다.

여론이 안좋아지자 관리·감독 관청인 한강유역환경청이 조사에 나섰고, 결국 서울대공원을 고발 조치했다. 야생생물법은 정당한 사유 없이 야생동물을 죽이거나 학대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한강유역환경청은 "서울대공원이 그물무늬왕뱀의 알들을 폐기 처분했다는 민원이 접수돼 특별점검을 했고, 그 결과 법 위반 사실이 확인돼 고발했다"면서 "서울대공원 사정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로서는 고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서울대공원 관계자는 "환경부에서 소명을 요구하길래 ‘당시 선택이 불가피했다’는 내용을 충분히 설명했지만, 바로 다음날 경찰에 고발장을 냈다"면서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상황인데 환경당국이 고발을 할 게 아니라 같이 대책을 찾아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